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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Theology)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_Part 1

by Chungbin 2022.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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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또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인격을 다루는 기독교 교리에서는, 왜 기독교는 인간 역사의 작은 부분에 속한 한 사람인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과 인간 운명의 본질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다고 믿는가 라는 문제를 탐구한다. 이번 논의를 시작하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라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의 회칙인 '신앙과 이성'에서, 나사렛 예수를 기독교 실재관의 중심으로 제시하는 고전적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에서 우리는 인간의 정신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원하고도 결정적인 종합이 이루어진 것을 본다. 영원한 것이 시간 안에 들어오고, 전체가 부분 속에 감추어지며,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지니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전해진 진리는 더 이상 특정 장소나 문화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그 진리를 인간 삶에 절대 타당한 의미의 원천이 되는 말씀으로 인정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어진 것이다. 

 

  '그리스도론'이라고 불리는 이 신학 분야에서는 예수를 커다란 개념 지도 위에 배치하는 일을 한다. 그리스도론은 시간과 영원, 인간성과 신성, 그리고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좌표에 따라 그리스도를 위치시켜, 특정한 시공간에서 발생한 이 사건이 어떻게 모든 사람과 모든 시대 가운데 적합한 것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고자 노력한다. 

 

  나사렛 예수의 의미에 대한 고전적 기독교의 설명은 성육신과, 신성과 인성이라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 이론으로 구성되어 왔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신학을 처음 공부하는 이들에게 이 개념들이 낯설 것이며, 따라서 이 장의 상세한 부분으로 들어가기 전에 전체 주제를 개괄하여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교회가 나사렛 예수의 정체성 및 의미의 문제와 씨름하게 되면서, 특별히 교부 시대 동안에 이 문제의 해석 모델이 넓은 영역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4세기 말에 이르러 교회는 집단 지성을 구성해 두 본성 공식으로 알려진 것, 곧 '예수는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다'라는 공식을 나사렛 예수를 묘사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확정하였다. 이것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완전한 모습으로 다듬어져서 흔히 '칼케돈 신조'라고 불린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은 기독교 신학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넓게 보아 신학을 하나님에 관한 말이라고 정의한다면, 기독교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중심적인 역할을 부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형상'으로 여겨지며, 하나님이 어떤 형상이신지 볼 수 있게 한다. 신학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차지하는 위치를 기독교 적으로 이해하는 데는 네 가지 기본 요소가 있다. 첫 번째는 역사적인 것이며, 그에 반해 나머지 셋은 보다 더 두드러진 신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역사적 출발점이다

 

  이 논제는 비교적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의 문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기독교가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해석은 실제로 훨씬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나사렛 예수가 세상 속으로 무언가 새로운 것을 가져온 것이 있는가라는 문제를 고려해 보자.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볼 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자연종교를 되풀이했을 뿐이며, 바울을 포함한 그의 추종자들이 그것을 재빠르게 변조한 것이다. 그의 말과 행위에서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이다. 예수의 통찰들은, 타당한 것인 한에서는 어떤 것이든 인간의 전능한 이성을 사용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합리주의는 예수에게서 '옳은 것'과 '새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예수에게 옳은 것이 있다면, 인간의 온전한 이성이 늘 참으로 인식해 온 것들에 동의했다는 것뿐이며, 또 그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말했다면 그것은 당연히 애초부터 비합리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전혀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를 독일 자유주의 개신교에서, 특히 알브레히트 리츨의 저술에서 살펴 볼 수 있다. 리츨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상황에 새로운 것, 그때까지 이성이 무시해 왔던 것을 가져왔다고 이야기했다. 합리주의자들은 합리적인 보편 종교를 믿으며 개별적인 세계 종교들은 기껏해야 이 보편적 종교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에 반해 리플은 그런 보편 종교는 이성의 허구이며, 역사적 구체성을 결여한 몽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기독교는 명확하게 신학적이고 문화적인 특성을 지닌 역사적 종교이며, 그러한 특성은 일부분은 명확히 나사렛 예수에게서 온다. 

 

  이러한 역사적 고찰도 중요하지만 기독교 신학은 일바적으로 예수의 의미를 아래에서 살펴볼 세 가지 특별한 신학적 틀을 사용해 강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계시한다

 

  기독교 신학의 핵심을 이루는 요소는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계시적 임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기독교 특유의 구체적인 방식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이로 생각된다. 이러한 확신을 가장 철저하게 다듬어 낸 책이 칼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이다. 그는 이렇게 인용한다. 

 

  "성서가 하나님에 관해 말할 때면, 결코 우리의 주의나 사고가 제멋대로 날뛰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성서가 하나님에 관해 말할 때면, 우리의 주의와 사고를 한 지점으로 몰아가며 거기서 우리에게 알려질 것에 집중하게 한다. 우리의 주의와 사고를 집중해야만 하는 곳이라고 성서가 가르치는 그 한 지점에 관해 우리가 좀 더 깊이 캐묻게 될 때, 성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보여준다."

 

  이러한 확신이 오랜 세월 동안 주류 기독교의 중심이 되어 왔다. 그래서 1세기 말경에 나온 것으로 보이는 '클레멘스의 두 번째 편지'에서 저자는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그의 서신을 시작한다. 영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마이클 램지도 바르트와 동일한 신학 논리를 펼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예수는 주이시다"라는 고백이 중요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사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닮으셨다는 사실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집중은 기독교와 타종교의 대화에 관심을 둔 사람들 사이에서 커다란 논쟁이 되었으며,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보다 자세히 살펴보자. 여기서는 그러한 진술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및 사역과 연관 짓지 않고서는 기독교 전통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기독교 신학이 분명히 알았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로서 밝혀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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