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사용하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말은 신학적인 성격이 강한 용어다. 이 두 용어의 바탕에는, 신약의 그리스도가 도래함으로써 지금까지 하나님이 다스려 온 세상을 상대화하고 폐기하였는데, 구약은 바로 그리스도 이전의 그 시대를 내용으로 삼는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거의 동일한 문헌집을 두고 유대 학자들은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라고 부르고 기독교 신학자들은 구약 성경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이 이 전집을 꼭 구약 성경이라고 불러야 할 이유는 없으며, 그저 관례적으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이렇게 신약과 구약으로 구분하게 된 바탕에는 언약이나 세대(dispensation)라는 신학적 프레임이 있다. 그리스도가 도래함으로 인해, 하나님이 전에 역사 속에서 행하신 일과 연속성을 지니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인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이 구약에 대한 독특한 태도를 낳았는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리로 정리할 수 있다.
1. 신학적 원리와 개념들은 기독교에서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2. 윤리적 원칙들은 기독교에서도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의 온전성을 존중해야 하는 것들이다.
3. 제의상의 관습들은 과거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루시던 시대에 속한 것으로 간주되며, 따라서 기독교인들에게는 더 이상 구속력을 지니지 못한다. 예를 들어, 구약 성경에 나오는 희생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가리키는 예표라고 이해한다. 완전한 희생 제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까닭에 구약의 희생 제사 제도는 폐기되었다.
그런데 기독교 신학에서 볼 때, 구약과 신약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와 관련한 급진적인 견해는 2세기의 저술가로서 144년에 기독교에서 쫓겨난 마르키온에게서 볼 수 있다. 마르키온은 구약 성경이 기독교와는 전혀 상관없는 종교의 신성한 문서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키온에 따르면,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로서 구약의 율법적이고 폭력적인 신이 어떤 식으로든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 쓰게 되리라"고 말하는 누가복음 5:37과 같은 신약 본문을 근거로 삼아 기독교가 유대교와 완전히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계속해서 그는 기독교가 유대교의 신앙, 의식과 아무런 관계도 갖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키온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목적은 구약 성경의 신을 물리치고 참된 은총의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는 데 있었다. 3세기의 신학자 테르툴리아누스는 마르키온의 핵심 가르침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가혹하고 호전적인 심판자인 신과 부드럽고 온유하며, 극히 선한 신으로 등급이 갈라지는" 전혀 별개의 두 신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였다.
이러한 개념이 마틴 루터의 저술 속에 희미하게 깃들어 있다. 루터는 구약과 신약이 모두 한 하나님의 행위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율법과 은총이 완전히 대립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루터에 따르면, 유대교는 행위에 의한 칭의 개념을 철저히 고수하였으며, 사람이 자기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이와는 달리 복음에서는 칭의가 완전히 값없이 주어지는 것이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오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구약 속에서도 은혜를 찾아볼 수 있고, 신약에서도 율법이 발견되지만, 대체로 루터는 구약 성경은 율법의 종교이며, 은총을 강조하는 신약 성경과는 대조를 이룬다고 강조하였다.
기독교 신학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견해에서는 두 성경의 연속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둘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였다. 장 칼뱅은 두 성경의 관계와 관련해 명쾌하고도 전형적인 이론을 주장했다. 그의 논점에 의하면, 신약과 구약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서 근본적인 유사점과 연속성을 갖는다. 첫째, 칼뱅은 하나님의 뜻의 불변성을 주장한다. 하나님은 구약 성경에서 어떤 일을 행하고, 이어서 신약 성경에서 그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일을 행할 수 없는 분이다. 두 성경 사이에는 행위와 의도와 관련해 근본적인 연속성이 존재한다. 둘째, 두 성경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선포하고 찬양한다. 구약 성경이 '멀리서 희미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럼에도 예수의 도래에 대한 구약의 증언은 참된 것이다. 셋째, 두 성경은 동일한 표징과 성례전을 담고 있으며, 하나님의 동일한 은혜를 증언한다.
그래서 칼뱅은 두 권의 성경이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성경은 경륜에서는 다르나 실체에서는 동일하다. 실체와 내용 면에서 두 성경 사이에는 불연속성이 전혀 없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우연히 신약 성경과는 다른 시기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동일하다.
칼뱅은 이 일반적 원리를 요약해서 "전체 율법과의 관계에서 볼 때, 복음은 단지 겉으로 명료하게 제시되었다는 점에서만 율법과 다르다"라고 주장한다.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그리스도가 증언되고 성령의 은총이 베풀어지지만, 특히 신약에서 훨씬 더 분명하고 완벽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견해가 주류 기독교의 특징이 되어 왔다. 예를 들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언문 속에서도 이러한 견해를 볼 수 있다. 이 공의회는 구약 성경이 기독교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따라 교회의 신앙과 선택이 족장들과 모세와 예언자들에게서 시작되었음을 인정한다. 교회는 또 그리스도의 모든 신실한 자들, 곧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함께 부르심을 받았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선택된 백성을 노예의 땅에서 해방하신 일 속에는 교회의 구원이 신비롭게 예표 되어 있음을 단언한다. 따라서 교회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나님과 옛 계약을 맺은 그 백성을 통해 교회가 구약의 계시를 이어받았음을 분명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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